[스크랩] 요가적인 운동 아사나^^
동작의 근육 사용을 연구한다.
한 동작에 할당된 호흡 수를 계산한다.
일정한 움직임의 동선을 60~70분 정도가 되게 짠다.
매일 반복한다.
반복하면서 동작들이 익어야한다.
반복하면서 동선의 흐름이 눈감고도 흘러가도록 집중 연습한다.
(근육은 발달하고, 균형적인 몸은 이런 수련 시간에 체워진다. 너무 몸의 문제에 집착말라.)
집중됨이 몰입의 느낌(시간과 공간이 축약, 기쁨, 행복감)이 들도록 업그레이드 될 때까지 반복한다.
그리곤 잠시 쉬었다가 바로 그 매트 위에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말고 숨만 바라보라.
동작을 하면서 호흡을 해아리던 그 집중의 힘이
평소에는 망상이나, 불편함을 주던 좌선이 한동안 그대를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집중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명상의 주제는 호흡의 들고, 나가는 현상에 대한 집중이다.
명상 주제를 놓치지 않고, 고요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중하라.
인내하라. 기억하라 명상 주제를...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라. 깨어있으라...
움직이는 거치른 집중을
앉아서 미세한 집중으로 전환시킨다.
움직이면서 수련한 집중은 상대적으로 대상이 크고, 거칠다.
초보들에게 집중을 유도하긴 좋다.
그러나 거칠기 때문에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기엔 한계가 많다.
앉아서 하는 의식의 집중과 몰입의 연습은
순수 의식의 집중을 연습하고, 미세한 의식의 집중을 연습해기에 적당하다.
바로 마음의 벽, 장막, 프로그램,허물, 개념들을 인식하기 위해서 말이다.
행선보다는 좌선이 보다더 미세하고 정교하며, 정밀하다.
선배들이 좌선 명상을 개발한 이유가 거기 있음을 일게 될 것이다.
단순한 사유나, 움직이는 명상으로
마음의 벽, 장막, 프로그램, 허물, 개념들을 보기란 심히 어렵다.
변화의 대상인 마음의 제원을 파악할 수 있어야 개혁의 방법론이 나온다.
대상을 모른체 짜는 방법은 호공에 사다리르 세우는 격이 될테니 말이다.
이런 것들이 요가적인 기본 모습들이다.
움직임이 의식을 집중시키는 기본이 되고,
그 힘을 그대로 앉아서 더 미세하게 연습시킨다.
그 미세한 마음의 집중의 힘은 저절로 자신을 보게한다.
보면 변화 시킬 방법이 떠오른다.
변화의 성공은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면서 수련한 자에게 다가온다.
사유한다고, 변화를 갈망한다고, 운동을 잘한다고, 좌복에 잘 앉는다고 오질 않는다.
모든 것으리 유기적으로 잘 복합될 때에 다가온다.
그것이 파탄잘리가 말한 아쉬탕가 요가의 복합성이다.
오늘 새벽 초로의 여성 수련자와 나눈 짧은 요가적인 수행법의 대강을 간추려 본다.